평소 대서사시나 인물들이 다양하게 얽혀 있는 책을 좋아하는데, 얼마 전 문득 누군가가 단편을 즐겨 읽었던 것이 생각나 찾아 읽은 책이 백수린 작가님의 [여름의 빌라]였다. 단편으로 작가님에 대해 궁금해 하던 찰나 운좋게도 갖게 된 신간 에세이.

1부는 작가님이 사는 동네, 2부는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상실감 그리고 3부는 이 시대에 작가로 혹은 여자로서 사는 삶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앞의 1,2부는 나에겐 조금 추억 여행 같았다. 유명한 빵집을 찾아서 간 서촌에서 우연히 강북의 오래된 빌라와 연립이 줄지어 있는 곳을 발견하고 아주 어릴 때 살았던 곳이 생각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작가님이 오래된 동네에 사는 수고로움과 토박이들의 오래된 규칙(?)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모습을 보니 예전 생각이 많이 났다. 동네를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 옆집 강아지 짖는 소리, 길 고양이 들의 하악질이 마저 쉽게 들리고, 여름이면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를 들꽃과 잡초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 자주 뽑아줘야 하는 약간은 귀찮은 집이었다.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나서 윗집의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 지곤 하는데, 그 때의 나는 진짜 예민했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음과 수고로움을 마치 일상인 것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다. 진짜 사춘기였지만 조금 덜 예민했던 것 같은 그때의 내가 좀 그리워지기도 했다.

팬데믹 이후로 익숙한 곳에서 조차 사람 소리가 나면 오히려 더 놀라게 된 지금을 생각하니 오래된 동네에 사는 수고로움이 오히려 삶을 사는 여유로움과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2부에서는 오랫동안 같이 지냈지만 얼마 전 무지개 다리를 건넌 반려견 봉봉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마당있는 집에 오래 산 덕에 반려견을 키울 수 있었던 우리 가족이 많이 사랑했던 하얀색 강아지 생각이 났다. 처음 그 강아지를 안았을 때의 따뜻하고 보들보들한 느낌과 그아이를 보내고 난 후의 슬픔이 같이 떠올랐다. 물리적인 어떤 존재를 통해 터득한 사랑과 그의 부재로 인한 슬픔의 극단적인 두 감정을 통해 많이 성숙했고 또한 그 성숙으로 다른 존재에 대한 더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다는 작가님의 생각에 많은 공감이 갔다.

그리고 3부에서는 이 시대에 여류작가로 사는 삶, 오래된 동네에 여자로서 사는 어려움과 자유로움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담담하게 글을 써 내려가지만 사실은 꽤나 많이 고군분투 하며 살고 있구나 느끼게 되어 조금 마음이 아팠다.

작은 것들로 인해 얻는 소소한 만족이 결국은 행복한 삶을 채우는 것이라는 작가님의 생각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동안 작가님 생각에 공감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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