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다른 세계사 책들과는 조금 다른 책이다. 세계사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사건에 집중하며 한 챕터 안에 많은 걸 녹여내고자 했다. 원제 자체가 <A short history of war>로 40여 개의 챕터 안에 인류의 정착부터 시작된 전쟁을 시작으로 고대 펠로폰네소스 전쟁부터 2020년 초까지 주요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챕터 안에 인과관계가 있는 정말 다양한 전쟁을 언급하고 있어 서구 중심 세계사 교육을 받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조금 어려운 책이었다. 그리고 사실 책을 읽으면서 번역자는 국어를 배우지 않았는가? 편집자는 존재했나? 강한 의문이 남았다. 가독성이 너무 좋지 않아 한 챕터 한 챕터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저자는 영국 출신임에도 서구 중심이 아닌 동양,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등 여러 측면에서 전쟁사를 다루고자 했다. 세계사에서 많이 언급되던 전쟁들은 과감하게 생략되었는데 그나마 임진왜란 이후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내용은 나름 익숙한 내용들이라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동아시아 진출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에서는 조금 불쾌한 부분이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대륙 진출을 시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까지 대륙 진출을 시도했으나 내전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명나라가 1640년에 만주족에게 멸망했으니 일본이 조금만 더 견뎠으면 대륙으로의 진출을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언급이 있었다. 일본의 욕심으로 수백 년간 무구한 희생이 있었음에도 동아시아의 역사상 일본의 후퇴가 큰 사건이었다니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범 세계사적 지식을 요하고, 구어체가 많아 읽기가 힘들며, 일본의 동아시아 진출을 아쉬워하는듯한 문체로 인해 기분이 나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얻게 된 내용은,
첫 번째, 인류사에서 전쟁은 계속 반복되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 종교 심지어 기술까지 인간이 할 수 있는 혹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전쟁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인류사는 어쩌면 전쟁사로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크고 작은 분쟁들이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모든 전쟁의 끝에는 '경제적 이익'이라는 내용이 숨어있다. 인간 본성의 권력욕구, 종교적 신념이나 민족주의적 이념과 같은 그럴듯한 말로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결국은 돈이다 (권력욕 역시 경제적 이유가 목적이라 생각한다). 인류가 인류라는 타이틀을 얻고 밀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재산을 축척하게 된 그 시점부터 '경제적 이익' 그것이 전쟁의 궁극적인 단 하나의 원인이었고, 그 이익을 위해 수많은 희생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많이 안타깝다.
세 번째, 전쟁은 많은 희생을 수반하며 이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이전에 읽었던 사피엔스, 총 균 쇠와 같은 책들에서 언급된 것처럼 인간의 역사가 그러하듯 전쟁의 역사도 불확실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쟁의 원인, 경과, 결과 역시 수많은 원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전쟁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불확실한 미래에 낙관을 부여한 것이라는 언급이 있다. 전쟁사를 모두 이해한다고 해서 미래에 뭔가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수많은 변수들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전쟁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자명한 한가지는 전쟁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 - 소년이온다 (이 책은 큰 맘 먹고 시작해야 하는 책입니다) (0) | 2024.10.11 |
---|---|
[24.09.17] 김영롱 - 연봉이 달라지는 실전 보고서 작성법 (2) | 2024.09.17 |
[24.08.28] 아서 코난 도일 -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 (모든 파도는 비밀을 품고 있다.) (0) | 2024.08.28 |
[24.05.24] 김상욱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0) | 2024.05.28 |
[24.03.25] 에이미 에드먼슨 - 두려움 없는 조직 (0) | 2024.05.05 |